사회

"상해진단서 있는데도 상해죄가 아니라고?"

코인으로 재테크 2018. 12. 9. 11:26



형사법에선 ‘상해’가 발생하면 단순폭행에 비해 형이 가중됩니다. ‘치상'(致傷, 상해에 이름)이 붙은 모든 죄가 기본 범죄에 비해 형이 중하고, 폭행죄(형법 제260조 제1항)의 형에 비해 폭행치상(동법 제262조)과 상해죄(동법 제257조 제1항)의 형이 더 중합니다.

같은 이치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가법)상 운전자폭행의 경우에도 폭행만 한 경우에는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상해의 결과를 야기한 경우에는 법정형이 무려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높아집니다.

그런데 비해 상해진단서는 별다른 외상이 없어도 피해자의 주관적인 통증 호소에 의존해 작성되는 경우가 비교적 많습니다.

그렇다면 상해진단서가 증거로 제출되는 모든 경우 법원은 반드시 상해를 인정하고 피고인에게 가중된 형을 선고해야 하는 걸까요?

대구고등법원은 최근 버스 운전기사 A씨(49세, 남)를 버스 운행 중 폭행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B씨(71세, 남)에게 상해에 의한 특가법위반(운전자폭행)의 점은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폭행에 의한 특가법위반(운전자폭행)의 점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하고 검찰과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는데요(대구고등법원 2018. 10. 4. 2018노291 판결).

B씨는 2017년 11월30일 오후 4시50분쯤 피해자 A씨가 운행하는 시내버스에 탑승하고 있던 중 버스기사 A씨가 전화통화를 하는 B씨에게 "운전에 방해가 되니 좀 조용히 좀 부탁합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에 B씨는 "버스기사는 뭐 이러냐, 기사가 왜 승객한테 시끄럽다고 따지고 그러냐, 네가 갑이냐 이 자식아"라고 말하며 A씨의 멱살과 팔을 잡아당기는 등 폭행을 했습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A씨는 ‘진단일로부터 14일 간의 치료를 요하는 경추의 염좌 및 긴장, 흉곽전벽의 타박상’이 기재된 상해진단서를 제출했습니다. 제1심 증인신문에서도 "B씨가 팔과 멱살 부분을 굉장히 강하게 잡아당겨 와이셔츠 단추 2개가 떨어졌다"며, "가슴팍이 뻘겋게 긁혀 있었고, 목 부분이 아리고 열도 올라왔으며, 다음날 통증이 더 심해져 병원에 내원해 입원치료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제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습니다.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상해의 점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고, 제1심 재판부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B씨의 폭행으로 인해 A씨가 상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상해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폭행에 의한 특가법위반(운전자폭행)의 점만 유죄로 인정해 A씨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무죄 부분에 대해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를 이유로, 피고인 B씨는 형이 과하다는 이유로 각 항소했습니다.

제2심 재판부는 "'상해'라 함은 피해자의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폭행에 수반된 상처가 극히 경미해 폭행이 없어도 일상생활 중 통상 발생할 수 있는 상처나 불편 정도이고, 자연적으로 치유되며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경우에는 상해죄의 상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없다"고 전제했습니다.

이어 ‘피해자의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였는지는 객관적,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연령, 성별, 체격 등 신체, 정신상의 구체적 상태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확립된 법리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형사사건에서 상해진단서는 상해사실의 존재 및 인과관계 역시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상해진단서의 객관성과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 증명력을 판단하는 데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건데요.

특히 상해진단서가 피해자의 주관적인 호소 등에만 의존해 발급된 때에는 △진단 일자 및 진단서 작성일자가 상해 발생 시점과 근접하고 △상해진단서 발급 경위에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은 없는지 △상해진단서에 기재된 상해 부위 및 정도가 피해자가 주장하는 상해의 원인 내지 경위와 일치하는지 △새로운 원인으로 생겼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사가 상해진단서를 발급한 근거 △피해자가 상해 사건 이후 진료를 받은 시점, 진료를 받게 된 동기와 경위 △그 이후의 진료 경과 등을 면밀히 살펴 논리와 경험법칙에 따라 그 증명력을 판단해야한다(대법원 2016도15018)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제2심 재판부는 "A씨가 입은 상처의 정도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정도로 중했는지, 병원에 입원해 정상적인 치료를 받았는지 의문"이라고 했는데요.

근거로 △A씨가 폭행당일 경찰에 "상처는 없지만 와이셔츠 단추 2개가 떨어졌다"고만 진술한 점 △버스 CCTV 영상에 의하면 B씨가 점퍼의 팔과 어깨 부분은 약 12초, 11초간 잡아당겼으나 그 정도가 강해 보이지 않고 A씨가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점 △만 49세의 체격이 건장한 남성인 A씨가 만 71세 B씨로부터 폭행을 당해 입은 상처가 신체의 건강상태를 불량하게 변경하거나 생활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보이지는 않는 점 △진료기록부와 상해진단서는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작성된 것으로, 피해자 주관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의 사실조회서를 제출한 점 △A씨가 입원을 하기는 했으나 의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 아니고, A씨의 휴대전화 발신 내역이 병원과 상당한 거리에 있는 기지국에서 모든 시간대에 걸쳐 골고루 발신된 점을 들었습니다.

이에 제2심 재판부는 제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상해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아 폭행의 점에 대해서만 유죄라 보고 피고인 B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의 형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상해진단서는 피고인의 상해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매우 유력한 증거이므로 형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상해진단서를 제출하면 상해의 결과는 지레 인정하고 나머지 법리 다툼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미 2016도15108 판결에서 밝힌 것처럼 상해진단서가 특별한 외상없이 주로 피해자의 주관적 통증 호소에 의존해 가능성만으로 발급된 때에는 그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는지 면밀히 살펴 증명력을 다퉈야 합니다.

물론 법관이 형을 선고할 때 상해의 정도에 따라 선고형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단순 폭행과 상해의 결과가 야기된 경우의 법정형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상해의 결과를 배척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실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형법상 폭행죄의 경우 반의사불벌죄라서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공소제기가 무효가 됩니다. 즉 상해의 결과를 배척해 폭행만 남기고 피해자와 합의하면 공소기각 판결까지 이끌어낼 수 있으므로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서구 등촌동 주차장 살인사건 얼굴 공개  (0) 2018.12.22
이혼시 로또도 분할?  (0) 2018.12.09